[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북한이 3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새 헌법을 통해 ‘조국통일’ 문구를 전면 삭제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핵무력 지휘·사용권을 헌법 차원에서 명문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관계를 사실상 ‘두 개의 국가’로 못 박고, 통치 체제를 ‘김정은 핵독점 체제’로 재설계한 정치·군사적 분기점이다.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북한의 개정 헌법 초안에 따르면, 남한과의 통일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두 한국을 적대적인 별개의 국가로 규정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노선을 공식화했다고 밝혔다.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북한 헌법에 영토 조항이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헌법에서 사라진 ‘조국통일’
한국 통일부가 입수해 5일 공개한 북한 개정 헌법 전문과 조문에 따르면, 기존 헌법(2023년 9월 개정판)에 들어있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과 “조국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표현이 모두 삭제됐다. 1948년 정권 수립 이래 70여 년간 유지돼온 ‘통일 지향’ 정체성이 헌법에서 처음으로 빠진 것이다.
개정 헌법은 대신 남북을 ‘동족’이 아닌 별개의 국가로 전제하는 이른바 ‘두 국가 노선’을 반영했다는 것이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2023년 12월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정은이 지시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이 약 2년 반 만에 헌법으로 완결됐다”며 “북한에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방증한다”고 평가했다.
새로 등장한 영토조항, 南은 ‘대한민국’으로 표기
이번 개정의 상징적 변화는 헌법 제2조에 처음으로 도입된 영토 조항이다. 새 조문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고 규정했다.
첫째, 북한은 헌법상 자국 영토를 ‘북측 지역’으로 한정하면서, 남쪽을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국가명으로 표기했다. 과거 ‘괴뢰’ 등 비난 용어로 불러온 남측 정권을 헌법에서 국가 단위로 인정한 셈이어서, 남북관계를 ‘내전·민족 내부 문제’가 아닌 ‘국가 대 국가’ 구도로 전환했음을 시사한다.
둘째, 이 조항은 남북 간 군사적 분쟁의 뇌관인 해상 경계선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했다. 이번 헌법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군사분계선(MDL)의 명칭은 물론 구체적인 좌표 규정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두 국가 노선을 헌법에 올리되, 당장 새로운 영토분쟁을 촉발할 수 있는 요소는 피하려는 절충”으로 해석하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헌법 서문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 표현이 삭제되고 김정은의 통치 이념인 ‘인민대중제일주의’가 새로 명기됐다. 수령 일가 3대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념의 중심축을 김정은 개인으로 재조정한 셈이다.
김정은, 헌법이 보장한 ‘핵 방아쇠’ 독점
이번 개헌의 또 다른 축은 김정은의 핵 지휘권을 둘러싼 조항이다. 개정 헌법 제89조에는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장에게 있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명시됐다. 2022년 9월 ‘핵무력 정책 법제화’ 때 “핵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고 규정했던 수준을 헌법으로 격상한 것이다.
더 주목되는 부분은 ‘위임’ 조항이다. 국무위원장이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다는 문구가 신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김정은 유고나 해외 체류 시에도 자동 보복타격이 가능하도록 한 ‘자동 핵타격(auto-retaliation) 체계’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은의 핵무력 지휘권을 독점하되, 위임 조항을 통해 참수작전이나 우발적 제거에 대비한 2차·3차 발사 체계를 헌법에 올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상 북한판 ‘데드맨 스위치(Dead man’s switch)’ 구상이 헌법 텍스트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무위원장은 ‘국가수반’, 최고인민회의 위에 선 권력
정치체제 측면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권력 집중이 한층 강화됐다. 새 헌법에 따르면, 국무위원장은 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으로 정의된다. 이전 헌법이 국무위원장을 “국가의 최고영도자”로 규정하며 형식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두었던 것과는 구조가 달라졌다.
또한 개정 헌법에는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한 법령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무위원장에 대한 최고인민회의의 소환·해임 권한도 삭제돼, 형식적이던 ‘입법부의 견제’ 장치는 사실상 사라졌다. 행정부·입법부·군을 아우르는 초헌법적 권력이 헌법 조문 속에 제도화된 셈이다.
국제사회 메시지도 분명하다. 북한은 국방 관련 조항에서 자신들을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규정하며, “나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핵 능력을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2009년 개헌 이후 이어져 온 논리를 유지하면서도, 이번에는 그 ‘핵 방아쇠’가 김정은 개인에게 헌법적으로 귀속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두 국가–핵독점 체제’가 의미하는 것
이번 개헌은 요약하면 ▲통일 책임의 헌법적 폐기 ▲남북관계의 ‘국가 대 국가’화 ▲김정은 1인 핵독점 체제의 제도화를 동시에 밀어붙인 조치다. 단기적으로는 남북 대화와 통일 담론의 제도적 기반이 사라지면서, 한국 정부가 활용해 온 기존 대북정책 레토릭(민족·통일·화해)의 설득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장기적으로는, 국가수반이자 헌법상 유일한 핵 지휘자로서의 김정은 위상이 강화될수록, 북한 비핵화 협상은 ‘체제 자체를 건드리는 협상’이라는 성격이 더 짙어진다. 핵은 단순한 군사수단이 아니라, 김정은 통치체제의 헌법적 기반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동시에 북한은 영토조항에서 분쟁 해상경계 언급을 피하고,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라는 직접 표현을 넣지 않는 등 여지를 남겨두었다. ‘통일 포기–체제 보장’이라는 최대 목표를 정확히 드러내되, 전면적 군사충돌의 명분이 될 수 있는 요소는 관리하려는 계산된 완급조절로 읽힌다.
이제 관건은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 ‘두 국가–핵독점 헌법’을 새로운 기본조건으로 삼을지, 아니면 다시 뒤집을 협상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달렸다. 질문은 분명하다. 헌법으로 못 박힌 김정은의 핵 국가를 상대로, 어떤 형태의 위기관리와 억지 전략이 유효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