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바다는 인류에게 언제나 행복과 고통이란 두 가지 얼굴을 보여왔다. 때론 풍요의 통로이자 죽음의 함정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뱃사람들이 어두운 수평선을 응시하며 두려움에 떨 때, 인류는 그 어둠 속에 불을 세웠다. 그것이 등대의 시작이었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문명이 바다에 던진 가장 오래된 물음 "여기, 살아있는 자가 있다"에 대한 대답이었다.
오늘도 전 세계 해안선을 따라 약 1만8,700개의 등대가 켜져 있다. 저마다 다른 섬광 주기로, 저마다 다른 색으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밤바다를 밝힌다.
Guinness World Records, Marine Insight – Top 10 Tallest Lighthouses In The World, WorldAtlas, Lighthouse Directory (Wikipedia), Sails of Change, CBC News, Chance Heritage Trust – Cape Race, Fascinating Spain, Oldest.org, Bishop Rock – Wikipedia, 해양수산부의 자료를 토대로 세계의 등대에 관한 최장·최고·최소에서 철학과 문화까지, 바다의 파수꾼인 등대, 그 빛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1. 인류 최초의 등대…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의 역사는 기원전 280~247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항구 입구 파로스(Pharos) 섬에 건립된 '알렉산드리아 등대(Lighthouse of Alexandria)'가 그 시초다. 그리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건설한 이 거대한 탑은 높이가 약 130m에 달했으며, 꼭대기의 화염이 청동 거울에 반사되어 약 50km 밖에서도 식별 가능했던 것으로 기록됐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던 이 등대는 수차례 지진으로 파손되고 결국 1303~1480년 사이 무너졌지만, '등대'를 뜻하는 프랑스어 'phare', 스페인어 'faro'는 모두 '파로스(Pharos)'에서 비롯됐다.
2.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등대… 스페인 헤르쿨레스의 탑
지금도 현역으로 현장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가장 오래된 등대는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아 코루냐(A Corua)에 위치한 '헤르쿨레스의 탑(Tower of Hercules)'이다. 로마 시대인 서기 1세기(40~80년 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매일 밤 빛을 발한다. 높이 59m, 광달거리 24해리(약 44km).
유네스코는 2009년 이 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약 2,000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대서양의 파도를 바라보는 이 탑 앞에 서면, 인류의 역사가 단지 숫자가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3. 세계에서 가장 높은 등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등대
현재 기네스 세계기록이 공인한 세계 최고(最高) 등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Jeddah) 이슬람 항구 북문 입구에 솟아있는 '제다 등대(Jeddah Light)'다. 높이 133m(431피트), 1990년 준공됐다. 콘크리트와 철강으로 건립된 이 탑은 항구 관제탑(Port Control Tower) 기능도 겸하며, 초점 높이(focal height)는 137m이고 20초에 세 번 하얀 섬광을 발한다. 광달거리는 46km에 달한다.
단, 순수하게 항해 안내만을 목적으로 건설된 전통적 의미의 최고 등대(tallest traditional lighthouse)는 프랑스 브르타뉴 피니스테르(Finistre) 연안 작은 섬 위에 솟은 '일비에르쥬 등대(le Vierge Lighthouse)'다. 1897~1902년 건설, 높이 82.5m.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석조 등대이며, 순수 항해 목적 등대 중 세계 최고 높이다.
4.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등대… 광도 전쟁
등대의 '힘'은 높이가 아닌 빛의 세기, 즉 광도(candela)와 광달거리(, luminous range)로 측정된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세계적으로도 최강 수준으로 꼽히는 등대는 프랑스 브르타뉴 우에상(Ushant) 섬 북서단에 자리한 '크레아크 등대(Crac'h Lighthouse)'다. 1863년 건설, 높이 55m. 광도 1,200만 칸델라(candela), 광달거리 32해리(약 60km)에 달한다.
이 등대의 빛은 영국 리저드 포인트(Lizard Point) 등대와 함께 영불해협의 사실상 '출발선'을 이루며, 세계일주 요트경주 '쥘 베른 트로피(Jules Verne Trophy)'의 공식 기점이기도 하다. 렌즈는 독특하게도 두 층으로 구성된 4개 패널의 이중 렌즈 구조이며, 2,000W 고출력 메탈할라이드 램프를 사용한다.
독일 헬리골란트(Heligoland) 등대는 3,500만 칸델라로 독일 북해 해안에서 가장 강력한 빛을 자랑한다.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케이프 레이스 등대(Cape Race Lighthouse)'는 세계에서 12개 미만만이 현존하는 '초방사형(Hyperradiant) 프레넬 렌즈'를 사용한다. 1907년 설치 당시 150만 칸델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등대'였으며, 4.5톤 무게의 이 거대한 렌즈는 수은 욕조 위에 띄워져 4분의 1마력 모터로 회전한다. 광달거리는 공식 24해리(44km)이지만, 맑은 겨울밤에는 80km 밖에서도 식별됐다는 기록이 있다.

5. 광달거리… 빛이 닿는 가장 먼 곳
'광달거리'란 등대의 빛이 정상적인 기상 조건에서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최대 거리를 말한다. 이는 광도(빛의 세기)뿐 아니라 등대의 높이, 관측자의 눈높이, 대기 투명도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수치다. 세계적으로 광달거리가 가장 긴 등대로는 프랑스 크레아크 등대(32해리, 약 60km)가 꼽힌다.
한국에서 가장 광달거리가 긴 오륙도·죽도·울기 등대의 74km(약 40해리)는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치다.
6. 세계에서 가장 작은 등대… 비숍 록
기네스 세계기록에 따르면 세계에서 건물이 세워진 가장 작은 섬은 영국 콘월 랜즈 엔드(Land's End) 남서쪽 44km, 실리 제도(Isles of Scilly) 서쪽 6km 해상의 '비숍 록(Bishop Rock)'이다. 이 암초 위에 세워진 비숍 록 등대는 '등대의 왕(King of the Lighthouses)'이라 불린다. 1847년 철제 구조물로 건설을 시작했지만 완공 전 폭풍에 쓸려갔고, 1858년 현재의 석조 등대가 완성됐다. 높이 49m.
7. 등대만의 또 다른 극단의 기록들
세계 최남단 등대는 칠레 '혼 곶(Cabo de Hornos)' 섬의 '모누멘탈 카보 데 오르노스 등대'로, 1991년 11월 17일 기네스 최남단 등대로 공식 등재됐다. 남위 55도 58분,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험한 뱃길의 끝에 서 있다.
이탈리아 제노바 항구의 '라 란테르나(La Lanterna)'는 1543년에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현재도 항행 원조 기능을 유지하는 등대 중 가장 오래된 사례 가운데 하나다. 높이 76m.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 형상 등대는 대한민국 제주도 이호항(Iho Hang) 방파제에 세워진 '제주 말 등대(Jeju Lighthorses)'다. 한 쌍의 제주마 모양 등대로, 각각 높이 12m이며 2009년 2월 4일 완공됐다.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공식 등재됐다.
8. 한국의 등대… 오륙도에서 해남까지
한국 최초의 근대 등대는 1903년 인천 팔미도 등대다. 해양수산부는 전국에 총 3,000여 개의 항로표지를 관리하며, 그중 유인등대는 41개소다. 한국에서 광달거리가 가장 긴 등대는 부산 오륙도 등대·경북 죽도 등대·울산 울기 등대 등으로 약 74km에 달한다. 오륙도 등대는 1937년 11월 처음 점등됐으며 현재 높이 27.5m로, 10초에 한 번 섬광을 발한다. 한국에서 해발 기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등대는 전남 해남군 해남곶 등대로, 높이 203m에 달한다.
9. 등대를 만든 기술 혁명… 프레넬 렌즈
현대적 등대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전환점은 1822년 프랑스 물리학자 오귀스탱 장 프레넬(Augustin-Jean Fresnel)이 발명한 프레넬 렌즈(Fresnel lens)의 탄생이었다. 기존 반사경 방식 등대가 빛의 97%를 손실했던 것에 반해, 프레넬 렌즈는 빛 손실을 17%로 줄이며 동일한 광원에서 훨씬 강력한 빛을 멀리까지 투사할 수 있게 했다.
1823년 7월 23일, 최초의 1등급 프레넬 렌즈가 프랑스 코르두앙(Cordouan) 등대에 설치되며 등대의 역사를 바꿨다. 세계에 33개만 제작된 초방사형(Hyperradiant) 프레넬 렌즈 중 현재 12개 미만만이 현역으로 운용 중이다.
10. 등대의 언어… 섬광 주기의 비밀
모든 등대는 각자의 '서명(signature)'을 갖는다. 이른바 '섬광 주기(Flash Pattern)'로, 선박들이 특정 해역에 어떤 등대가 있는지 식별하는 국제적 언어 체계다. 오륙도 등대는 10초에 한 번, 독도 등대는 12초에 한 번, 영도 등대는 18초에 세 번 섬광을 내보낸다.
등대의 색도 정보를 담고 있다. 빨간 불빛은 암초나 위험 해역 경고, 하얀 불빛은 안전 항로를 의미한다.
11. 철학과 바라보고 문학이 해석한 등대
등대는 단순한 항해 구조물을 넘어 인류의 가장 깊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힌다는 것(kindling a light in the darkness of mere being)이 의식이 무의식을 이기는 인간 정신의 본질이다."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융(Carl Jung)은 등대를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개인 의식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등대의 이중적 상징 은 인류의 원형적 심상(archetype)과 맞닿아 있다. 등대의 탑(권력, 정신)과 내부 공간(피난처, 안식)의 결합은 결국 인간의 의식과 일맥상통한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1927년 소설 『등대로(To the Lighthouse)』에서 등대를 시간, 상실, 예술의 복합적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등대 앞에 도달하는 것은 목표 달성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 그 자체임을 울프는 말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1929년 작 『두 개의 빛에 비친 등대(The Lighthouse at Two Lights)』에서 등대를 거대한 팔루스(phallic symbol)로 형상화했다.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등대의 우람함은 실재(reality)에 다가가려는 욕망이 차단된 상태에서 더욱 과잉적으로 표현된다.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영원히 타오르는 불(everlasting fire)"을 우주의 본질이라 했을 때, 등대지기가 매일 밤 불을 밝히는 행위는 단순한 직업이 아닌 존재론적 의례(ritual)였다. 고독한 암초 위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밤에도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 그것이 등대가 인류에게 전하는 가장 오래된 메시지다.
12. 디지털 시대에도 등개가 꺼지지 않는 이유
GPS와 전자해도(ENC)가 보편화된 21세기에도 등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자장치는 전자기 간섭, 해킹, 전원 차단에 취약하다. 국제항로표지협회(IALA)는 등대를 포함한 전통 항로표지의 유지를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기술이 진화할수록, 오히려 인간은 가장 오래된 빛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등대의 역설이며, 동시에 등대가 지닌 철학적 항구성이다.
한 철학자는 "등대를 바라보는 자는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암초와 폭풍을 경고하는 빛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 삶이 있다'는 신호"라며 "수천 년 전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불꽃도, 지금 제주 이호항 말 모양 등대의 깜빡임도, 같은 말을 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어둠 속에서 빛을 켠다는 등대의 가치를 해석했다.
즉 빛이 닿는 곳까지가 세계이며 지구이다. 그 빛의 반경이 바로 우리 인류 문명의 지도인 셈이다.
13. 세계 등대의 날 '7월 1일'… 미국 국립 등대의 날 '8월 7일 '
"세계 등대의 날(World Lighthouse Day)"은 매년 7월 1일이다. 이 날은 국제항로표지협회(IALA·International Association of Marine Aids to Navigation and Lighthouse Authorities)가 2018년 5월 29일 대한민국 인천에서 열린 제13차 IALA 세계총회(General Assembly)에서 공식 제정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이 날은 "등대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고 전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제정됐다. 공식 명칭은 '세계 항로표지의 날(World Marine Aids to Navigation Day)'이며, 등대는 그 핵심 상징으로 통용된다.
7월 1일로 날짜를 정한 특별한 역사적 사건이 공식 문서에 명시돼 있지는 않다. IALA 공식 발표에서도 제정 취지(안전 항해와 항로표지의 중요성 홍보)는 밝혔지만 날짜 선택의 구체적 사유는 별도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7월 1일은 전 세계 대부분의 해역에서 본격적인 하계 항해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며, 이를 전후해 선박 안전 인식 제고가 가장 시의성 있다는 실용적 이유가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 총회에서 한국 측 제안이 반영됐다는 점에서, 개최국 한국의 여름 해양 관광 시즌과도 맞물린다.
한국은 2024년부터 7월 1일을 포함한 첫째 주를 대한민국 등대주간으로 지정해 전국 등대에서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2025년 제7회 세계 등대의 날 기념식은 제주 우도 등대에서 개최됐다.

등대와 관련된 국제 기념일은 하나가 아니다. 사실상 세 가지가 병존하며, 각각 유래와 성격이 다르다.
7월 1일 세계 등대의 날 (World Lighthouse Day)과 함께 8월 7일 미국 국립 등대의 날 (National Lighthouse Day), 8월 셋째 주말 국제 등대·등선 주말 (ILLW)의 행사가 있다. 이날 1993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아마추어 무선사들의 등대 교신 행사가 이뤄진다.
미국에서 8월 7일이 등대의 날이 된 것은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다. 1789년 8월 7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등대·신호등·부표·공공 선착장의 설립 및 지원에 관한 법률(An Act for the establishment and support of lighthouses, beacons, buoys, and public piers)"에 서명했다. 이른바 '제1회의 제9법(Ninth Act of the First Congress)'으로, 미국 연방정부가 처음으로 등대를 국가 책임으로 관리하도록 규정한 법이다.
200주년인 1989년, 로드아일랜드 상원의원 존 채피(John H. Chafee)의 발의로 상원이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공법(Public Law 100-622)에 서명해 1989년 8월 7일을 '국립 등대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US Lighthouse Society). 다만 이 지정은 1989년 단 하루에 한정된 것이었고, 이후 매년 정례화를 시도했으나 의회의 영구 입법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