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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내궁내정] 트럼프 협상학, ‘거래의 기술’이 남긴 정치·문화적 유산…“크게 질러 불안하게 만들고, 여론까지 장악하라”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자서전 겸 비즈니스 회고록인 『거래의 기술(Trump: The Art of the Deal)』은 1987년 출간 이후 30년 넘게 ‘트럼프식 협상학’의 원전으로 인용돼 왔다.

 

트럼프는 이 책에서 “목표를 높게 잡은 뒤 목표 달성을 위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할 뿐”이라며, 작은 이익이 아니라 판 자체를 뒤흔드는 빅딜 지향형 협상가로 자신을 규정한다. 반세기 가까운 뉴욕 부동산 개발 경험을 통해 쌓인 그의 협상 스타일은 “판을 흔들어 자기 스타일로 다시 짜고, 크게 생각하며, 다양한 지렛대를 동원해 최고위층과 단번에 담판 짓는 방식”으로 요약된다.

 

1. “크게 생각하라”… 극단적 앵커링의 정치학


『거래의 기술』에서 첫 손에 꼽히는 원칙은 “생각을 크게 하라(Think big)”다. 한국 언론들은 이를 “처음부터 통 크게 질러 출발점을 유리하게 선점하는 극단적 요구 전략”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트럼프는 부동산 거래에서든 외교 협상이든 초기에 과도한 요구를 던져 협상 범위를 자기 쪽으로 당기는 ‘앵커링(anchoring)’ 전술을 집요하게 사용해 왔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협상 방식을 “판을 흔들어 자신의 스타일로 새로 짜고, 크게 생각하여 판도 크게 짠다”고 정리하면서, 미·북 정상회담 과정에서 그가 북핵 문제를 단번에 ‘빅딜’로 해결하겠다고 밀어붙인 방식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극단적 앵커링은 비즈니스 협상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검증된 심리 전술로, 초기 제시 가격이 실제 합의 가격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끌어올린다는 연구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크게 질러라”는 원칙은 감각이 아니라 행동경제학의 전형적 응용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 정치권도 이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표의 재정·부동산 구상에 ‘트럼프 11가지 흥정 패턴’을 빗대어, 처음부터 높은 목표를 걸어두고 협상 과정에서 일부를 양보하는 방식이 국내 정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식 빅딜 협상은 더 이상 미국 부동산 업자의 기행이 아니라, 글로벌 정치의 언어가 된 셈이다.

 

 

2. “지렛대를 극대화하라”… 상대의 손실을 부각시키는 구조


트럼프 협상학의 두 번째 축은 “Maximize leverage”, 즉 협상에서 쥘 수 있는 모든 지렛대를 동원해 상대의 손실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북 전략을 “중국을 지렛대로 삼는 방식”으로 규정하면서, 북한 핵 문제를 중국과의 무역·안보 카드와 연동해 협상 범위를 넓히는 ‘다중 이슈 연계’ 전략으로 해석했다.

 

좋은습관연구소가 정리한 ‘트럼프 협상의 기술’에서도 “이 문제만 보지 말고, 전체 그림을 보시죠”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다중 이슈 연계가 핵심 기술로 꼽힌다.

 

국제 통상 현장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된다. 2025년 월간 『통상』은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의 무역 협상 전략을 “단기 성과·정치적 이익 중심, 부분 양보를 통해 갈등을 피하면서 미국에 유리한 구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요약했다. 이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하나의 분쟁 현안을 다른 분야(관세·안보·에너지 등)와 연계해 “전면 충돌은 피하되, 상대국이 잃을 것이 더 많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고 분석한다.

 

국내외 미디어들도 이런 방식을 “지렛대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판을 주도하는 트럼프식 협상”으로 보면서도, 장기적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단기 성과 중심 협상’이라는 비판을 병기한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관계의 지속성’보다 ‘순간의 효용’을 우선하는 공리주의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

 

상대와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깎아 먹더라도, 지금 이 순간 국민 여론과 주가, 지지율이라는 계량 가능한 수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세계관이다.

 

 

3. “예측 불가능한 광인”… 불확실성의 전략적 연출


트럼프 협상학에서 특히 눈에 띄는 원칙이 “Use uncertainty”, 즉 ‘내가 뭘 할지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국내외 분석 기사들은 이를 “예측 불가능한 광인(madman)” 전략으로 명명하며, 고전적인 닉슨의 ‘광인 이론’을 트럼프가 대중화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2025년 한 블로그 분석은 멕시코·캐나다와의 관세 협상에서 트럼프가 “25% 관세 폭탄”을 선언한 뒤 1개월 유예를 주고 협상장으로 끌어들인 사례를 대표적 전술로 꼽는다. 최종적으로는 10~15% 수준의 관세 타협을 이끌어냈지만, 초기의 과격한 카드와 ‘정말로 때릴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상대의 심리적 저항선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다.

 

이 같은 ‘예측 불가능성’은 숫자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브런치에 실린 「〈트럼프숫자〉의 협상전략」은 트럼프가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의 4배”라고 주장했을 때, 이 수치가 사실과 다르다는 당국자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론과 협상 구도를 흔든 현상을 분석한다. 필자는 트럼프가 여러 통계 중 자신에게 유리한 ‘4배’라는 숫자를 집어 들면, 그 순간 그 수치는 ‘트럼프숫자’로 재탄생해 정치적 현실이 된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왜곡된 숫자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팩트체크는 오히려 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며, 트럼프숫자 속 숨은 메시지와 최소공배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협상장에서 진실은 통계표가 아니라, 유권자가 받아들이는 ‘이야기’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냉정한 인식이다. 미디어 이론 관점에서 보면, 이는 “팩트보다 내러티브가 현실을 규정한다”는 후기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적 장면이기도 하다.

 

 

4. “언제든 떠날 준비”… 협상 테이블을 무기로 바꾸다


트럼프가 여러 연설과 인터뷰에서 반복해 강조한 문장은 “나는 협상에서 언제든지 테이블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대목이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칼럼을 통해 “트럼프 협상 전략의 핵심은 상대방을 무조건 압박하고 흔들어라”는 문장으로 그 본질을 요약하면서, 비협조적인 상대는 “무자비하게 후려치지만, 태도가 바뀌면 잘 대해준다”는 그의 ‘채찍과 당근’ 방식이 결국 ‘떠날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협상술’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리서치가 정리한 “트럼프를 상대하는 11가지 전술” 자료에는 “최대한 많은 옵션을 활용하라”, “현장을 직접 파악하라”는 원칙이 제시되는데, 이는 사실상 ‘언제든 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수 있되, 대체 옵션을 충분히 확보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협상 이론에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라 불리는 개념, 즉 협상 결렬 시 최선의 대안을 튼튼히 만들어 두라는 조언과 정확히 겹친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의 이 태도가 단지 비즈니스 현장을 넘어 외교 협상에서도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국제정치 전문가는 "트럼프는 중요한 협상은 반드시 최고위층과 직접 만나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미·북 회담에서 스스로 전면에 나서 협상을 주도하려 했다”고 전했다. 최고 권력자가 직접 나서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의 이미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상대가 “이 판이 깨지면 더 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느끼도록 압박하는 구조다.

 

철학적으로 이 방식은 스토아식 ‘무욕의 힘’이라기보다, “관계의 파기를 협상 카드로 쓰는 실용주의적 냉혹함”에 가깝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개인’이 가장 강한 협상력을 갖는다는 점을, 그는 정치와 외교의 영역에까지 확대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5. “내러티브를 장악하라”… 승리의 이미지를 파는 문화 기술


트럼프 협상학의 마지막 핵심은 “Control the narrative”, 즉 “항상 내가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라”는 명제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태도를 “선역·악역을 나눠 복합적 메시지로 상대를 포획하고, 우선 강하게 후려치고 시작한다”고 요약한다. 그의 협상이 늘 ‘몸짓과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된다고 분석했다.

 

미디어들은 트럼프의 전략을 “기브 앤 테이크이면서도, 여론전과 미디어 활용을 통해 자신이 늘 ‘판을 주도하는 승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치적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식 협상은 실제 실익뿐 아니라 “언론 보도에서 누가 이겼다고 쓰이느냐”를 결정적인 성과 지표로 삼는다.

 

앞서 소개한 월간 『통상』의 진단처럼, 그는 “부분적 양보를 통해 전면 충돌을 피하면서도 정치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호했다.

 

한국 KBS 라디오 프로그램 ‘성공예감’의 심리학 코너에서도 트럼프 사례를 언급하며 “첫인상, 타이밍, 프레이밍이 협상의 3대 전략”이라는 전문가 견해가 소개됐다. 여기서 프레이밍은 협상 결과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의 문제, 즉 “내가 이겼다고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내러티브의 경쟁이다.

 

문화 연구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협상술은 사실상 “리얼리티 쇼의 문법을 국제정치와 비즈니스에 이식한 사례”로 읽힌다. 승패의 실질보다 화면 속 이미지, 숫자의 정확성보다 ‘트럼프숫자’가 만들어내는 인상, 조항 하나하나보다 “내가 빅딜을 성사시켰다”는 스토리가 더 중요해진 세계에서, 협상은 곧 서사 전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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