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칼럼] ‘보이는 그대로’ 떠올린다…같은 뉴런이 그리는 뇌 속 두 번째 스크린

  • 등록 2026.04.11 05: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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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익숙한 얼굴을 떠올리거나 좋아하는 장소를 회상할 때, 우리 뇌는 놀랍도록 직접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즉, 처음 그것을 실제로 보았을 때 활성화되었던 뉴런들 중 상당수가 동일하게 다시 발화한다.

 

Cedars-Sinai Medical Center, Science News, Caltech, Academic Jobs, Medical Xpress에 따르면, 시더스-사이나이 보건과학대학(Cedars-Sinai Health Sciences University) 연구팀이 시각 지각과 상상(심상)이 사실상 같은 뉴런 집단을 재사용한다는 결정적 단서를 내놓으면서, 인간 뇌의 ‘시각 코드’를 풀어가는 연구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4월 9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이 논문은 단일 뉴런(single neuron) 수준에서 ‘본 것처럼 떠올리는’ 메커니즘을 수치로 제시한 첫 사례로, 정신질환 치료와 차세대 인공지능 설계에까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같은 뉴런이 다시 켜진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했나

 

연구팀은 뇌전증 수술을 앞둔 성인 16명을 대상으로, 발작 초점을 찾기 위해 복측 측두 피질(VTC)에 삽입한 미세 전극으로 총 714개의 단일 뉴런 활동을 기록했다. 피실험자는 얼굴·동물·사물·텍스트 등 다양한 이미지 세트를 차례로 보았고, 연구진은 이때 반응하는 뉴런을 선별해 시각 자극에 대한 ‘코드’를 추출했다.

 

그 결과, 시각 자극에 반응을 보인 뉴런 가운데 약 80%가 ‘분산 축 코드(distributed axis code)’라는 방식으로 대상을 표현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각 뉴런이 사물의 특정 시각 특성(예를 들어 곡률, 길이, 질감 등)을 나타내는 하나의 축(axis)에 비례해 발화하며, 여러 뉴런의 축이 조합돼 하나의 물체가 고차원 특징 공간(feature space)의 한 점으로 ‘좌표화’된다는 개념이다.

 

핵심은 그 다음 단계였다. 피실험자 16명 중 6명에게는 별도의 ‘심상 과제’가 부여됐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직전에 봤던 동일한 이미지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리게 하고, 그 순간 동일한 뉴런들의 발화 패턴을 다시 측정한 것이다. 분석 결과, 시각 보기 단계에서 분명한 축 조율(axis-tuned)을 보였던 뉴런 중 약 40%가 상상 단계에서도 거의 동일한 축 코드로 재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어떤 얼굴이나 사물을 실제로 볼 때 사용했던 뉴런 서브셋의 상당 부분이, 그것을 마음속으로 떠올릴 때도 다시 켜진다는 정량적 증거가 제시된 셈이다.

 

연구를 이끈 우엘리 루티샤우저(Ueli Rutishauser) 시더스-사이나이 신경과학·의학센터 소장은 “우리는 이전에 본 사물을 처음 볼 때 사용했던 뇌세포를 재활성화함으로써 그 사물의 심상을 떠올린다”고 설명했다. 이 발언은 기존 fMRI 연구가 ‘같은 뇌 영역’ 수준에서만 암시했던 가설을, 단일 뉴런 레벨의 전기생리 데이터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축 코드’와 생성형 AI, 뉴런 언어를 해독하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특징은, 뇌과학과 인공지능이 실험 설계 단계부터 밀착 결합했다는 점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바룬 와디아(Varun Wadia)는 “첨단 인공지능 도구는 연구의 모든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먼저 인간 VTC 뉴런의 축 코드를 설명할 수 있는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의 고차원 특징 공간을 구축했고, 그 위에서 각 뉴런이 선호하는 축을 수학적으로 추정했다.

 

이후 생성형 AI를 활용해 “특정 뉴런이 최대한 강하게 발화할 것”으로 예측되는 합성 이미지들을 역설계(generative design)해냈다. 즉, AI가 그 뉴런의 축 선호도를 고려해 이상적인 자극 패턴을 가진 가상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를 실제 피실험자에게 제시해 예측된 대로 뉴런이 강하게 반응하는지를 검증한 것이다. 예측과 실측이 상당 부분 일치하면서, 인간 VTC 뉴런이 실제로 ‘분산 축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는 가설은 한 단계 더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러한 접근은 최근 동물 연구에서 제안된 ‘축 기반 표현(axis-based representation)’ 프레임워크를 인간 뇌에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 나아가, 뉴런의 선호 축을 파악해 맞춤형 시각 자극을 설계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는 시각 피질과 직접 소통하는 신경 인터페이스나, 뇌파 기반 디코더(brain–computer interface)의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상상 단계에서의 뉴런 발화 패턴만으로 피실험자가 마음속으로 떠올린 대상을 어느 정도 분류·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PTSD·강박장애·조현병까지…‘마음의 스크린’을 겨냥한 치료법 가능성

 

이번 결과는 정신의학에도 직격탄을 던진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허몬 게브레히웨트(Hermon Gebrehiwet) 프로그램 담당관은 시더스-사이나이 보도자료에서 “이번 발견은 심상 장애 및 현실 판단력 손상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과 질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평가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조현병, 통제되지 않는 트라우마 장면이 반복 재생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침투적이고 강박적인 심상이 특징인 강박장애(OCD) 등이 대표적이다.

 

논문 공동저자이자 시더스-사이나이 기능신경외과 프로그램 디렉터인 아담 마멜락(Adam Mamelak)은, “이 신경 과정에 대한 심층 이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장애,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생생한 심상을 수반하는 기타 정신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이미 반복적 경두개 자기자극(rTMS), 가상현실(VR) 노출 치료, 이미지 재구성(imagery rescripting) 기법 등을 활용해 심상 조절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저 메커니즘에서 ‘어떤 뉴런 집합이 어떤 코드로 잘못 재활성화되고 있는가’를 단일 뉴런 수준에서 짚어준 연구는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는 평가다.

 

중장기적으로는, 개별 환자에게서 문제가 되는 심상 회로(특정 VTC 뉴런 서브셋)의 축 구조를 파악한 뒤, 이를 약물·뇌자극·디지털 치료기기 등을 통해 ‘다른 축으로 재학습’시키는 정밀 치료 전략도 구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공포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축을 약화시키고, 대체 기억이나 안전 신호에 대응하는 축을 강화하는 식의 맞춤형 개입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는 아직까지 ‘추측한 내용입니다’에 가깝고, 실제 임상 응용을 위해서는 후속 연구와 대규모 검증이 필수적이다.

 

남은 퍼즐: ‘트리거’와 ‘선택 규칙’을 찾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가 모든 질문에 답을 준 것은 아니다. 연구진 스스로 인정하듯, 여전히 풀리지 않은 핵심 퍼즐은 두 가지다. 첫째, 특정 기억 이미지의 재생을 촉발하는 ‘트리거’는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상위 명령을 내려 VTC 축 코드를 불러오는지, 해마(hippocampus)가 인덱스(index) 역할을 하며 적절한 뉴런 집합을 검색하는지, 혹은 두 시스템이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둘째, 수많은 뉴런 중에서 ‘딱 맞는’ 서브셋만 선별적으로 재활성화되는 선택 메커니즘이다. 동일한 축 코드를 공유하는 뉴런이 여러 개 존재할 경우, 왜 특정 집합만 심상에 참여하고 다른 뉴런은 배제되는지, 또 그 과정에서 주의(attention)·감정(emotion)·맥락(context)이 어떤 가중치로 작동하는지는 아직 계량화되지 않았다. 이는 향후 단일 뉴런 기록과 전뇌 수준 이미징, 계산 모델링을 결합한 연구가 본격화되면 하나씩 맞춰질 퍼즐로 보인다.

 

한편, 이번 연구는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2024년 10월 선공개된 예비 버전에서 약 2년여에 걸친 수정·검증을 거쳐, 2026년 사이언스 정식 게재에 이르렀다. 그 사이 데이터셋은 정교해졌고, 축 코드와 심상 재활성화 비율(시각 반응 뉴런의 약 80%가 축 코드, 그 중 약 40%가 심상 시 재사용) 등 핵심 수치는 여러 독립 매체와 학술 기사에서 반복 인용되며 신뢰도를 높여가고 있다.

 

상상을 ‘뇌 속 두 번째 스크린’으로 비유한다면, 이번 연구는 그 스크린이 전적으로 새로운 회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쓰던 동일한 픽셀(뉴런) 배열을 재점등하는 과정임을 보여줬다. 남은 과제는 이 픽셀들이 언제, 어떤 규칙에 따라 켜지고 꺼지는지를 해독하는 일이다. 이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 이미지를 더 정확히 이해하는 동시에, 그것을 치유·강화·재설계하는 기술을 손에 넣게 될 가능성이 크다.

김정영 기자 jykim.71@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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